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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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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축복의 통로일까?
작성자 한용운 작성일 2006-07-22 13:49:47
공학에서 유체흐름(Fluid Flow)은 대학생들이 매우 힘들어하는 과목으로서 졸업을 위한 의무과목으로 하지 않으면 피하고 싶은 어려운 과목이다. 내 자신도 이렇게 어려운 것을 멋모르고 시작해서 이미 30년 동안 관련을 맺고 있지만 이제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흐름의 원리를 예측하는 수식이 모든 역학 중에서 가장 복잡하며 더욱 이 수식의 완전한 해법이 아직도 발견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어려운 이유는 공기나 물같이 흐르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점에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부인 뉴욕의 월가(Wall Street)에서는 몇몇의 회사가 이 어려운 유동방정식을 수퍼 컴퓨터로 풀어서 돈의 흐름(Money Flow)을 예측하려고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 흐름의 대상을 돈으로 바꾸어서 경로와 통화량을 예측해 보려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감추어진 흐름의 원리를 따라서 이동한다. 공기나 물, 돈의 흐름, 도로에서의 차량이동, 인구의 이동, 전기의 흐름, 인터넽에서 정보의 이동, 인체 내의 혈액순환, 신경을 통한 감각의 이동, 말의 소문 등, 그 경로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흐름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세상은 그 흐름을 예측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흐름은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이동하느냐가 문제일 뿐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이동하는지 그 속도가 문제가 된다. 순간적으로 불노소득에 의해 많은 재물을 얻은 자들이 그 재물을 관리하는 법을 몰라서 그 소득이 있기 전보다도 훨씬 불행한 삶을 살수도 있으며 폭포수와 같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자들이 부지런히 영성을 개발하지 못했을 때, 어느덧 냉랭함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경우도 볼 수 있다. 지난주의 집중 호우에 대한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너무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제한된 유로를 통하여 그 많은 양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준비되지 않고 그 많은 양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 빠른 흐름의 속도는 오히려 재앙이 된다. 특별히, 흐름의 속도 문제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역임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는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통로를 만드신다.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까지 정하시는 세밀한 분이시다.(욥38:25) 이 통로를 구축함에는 우리에게 상당한 부분을 위임하셨다. 물이 이동하는 댐과 하천, 상하수관, 전류가 통하는 전선, 자동차가 통행하는 도로, 피가 통하는 혈관 등을 보이게 하셨으며 일부 원리를 알게 하셨다. 이들을 관찰해 보면 유사한 흐름의 원칙들이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통로가 넓을수록 이동이 수월하여 많은 양이 이동한다. 하지만, 좁거나 굽어있고 통로 벽이 녹슬면 저항이 커져서 예상된 흐름의 양을 제한된 시간 내에 전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도로를 아무리 넓게 만들지만 도로변의 주차나 일시적 이중 주차 등은 관이 녹슨 것과 똑 같아서 일시적인 편리함을 누릴 수 있지만 그 결과는 교통 흐름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 마치 혈관에 노폐물이 차이면 피 순환에 장애가 되고 불결한 피가 특정한 곳에 적체되어 곧 그 부위가 썩게 되는 것과 같은 유사한 원리가 통용된다.

우리는 자주 축복의 통로임을 말한다. 우리 스스로 보이는 통로에서 배운 흐름의 원리를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은혜가 내 자신을 통해서 타인에게 전달되기를 원하신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리’ 의 복음송을 부를 때마다 사실 우리 자신들이 그 통로로서 자격이 있을까 소심해 지기 쉽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서 아주 오랜 동안 방황했던 기억이 있다. 통로가 나의 아집 때문에 좁아졌고 욕심 때문에 통로 벽내부에 녹이 슬지 않았을까. 그 어려운 방정식을 풀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완벽주의를 포기하면서 스스로 자유로워 졌다. 결국, 하나님은 나에게만 주어진 부족한 은사와 고집스런 성품을 그대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유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였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언약으로 주신 축복을 내가 아브라함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모습을 통해서 흐르게 하시는 것이다. 나 자신이 회복됨으로 매우 큰 통로의 역할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많은 공동체에 속하게 하셨다. 공동체는 정말 다양한 지체들로서 구성되어서 자생적으로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다. 각 지체들은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기체를 구성할 때, 강하고 약한 면을 모두 사용하시는 것을 본다. 공동체는 각 지체의 장점들이 세워질 때 진취적인 생산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약점이 드러날 때도 이 약점 때문에 모두 고통스러워 하지만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결속이 되면 그 결과는 좀 더 영적으로 성장한 공동체로 거듭난다. 이러한 영적 성장 과정에서 은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지체의 의무이다. 옹졸한 마음과 습관적인 죄의 버릇으로 통로의 벽에 녹을 슬지 않도록 해야 하고 체온이 내려가면 순간적으로 혈관이 수축되는 것처럼 냉랭함으로 통로가 좁아지지 않도록 항상 공동체의 허약자를 배려하며 열정을 유지해야 한다. 주님이 주관하시는 흐름의 속도는 조절할 수 없지만, 우리 각자에게는 평소에 유로를 정비하고 관리함으로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은사를 주신 것은 매우 다행인 것이다.
      
장마에 내리는 많은 비는 적절하게 저수를 하고 일정한 저수량이 넘치면 잘 정돈된 곧은 관을 통하여 하류로 신속히 배출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관을 곧게 하고 관 벽을 튼튼하게 하고 수시로 하천 정비를 통하여 저항을 줄이므로 수월하게 지나도록 해야 한다. 은혜는 혼자만 소유할 수 없고 흘러가야 한다. 마치 재물을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해야 함과 같다. 예배의 감동, 개인이 묵상 중에 얻은 말씀의 감동, 공들여 쌓아 놓은 유익한 지식들은 말씀헌신과 찬송과 기도로 또, 나에게만 주신 은사들은 사용하여 견고히 다져진 나의 통로를 통해서 수월하게 전달되도록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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