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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예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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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임은애 | 작성일 | 2020-03-01 01:15:59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는 말씀에서, ‘섬김’(service, 흠정역성경의 번역)은 ‘예배’(worship)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적인 예배 속에서만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한 일부이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의 예배 행위이다. 내 삶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은 또한 이 제사가 ‘이치에 합당한’(reasonable, 흠정역성경의 번역)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치에 합당한’ 예배는 정신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이다. 내면적인 것이다. 툭하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련다”라고 하면서 덤비는 자들이 항상 있다. 그들은 제사 ‘자체’(per se)에 어떤 공력이 있다고 느낀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성전이 없어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제사장들이나 대제사장들이 없어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산, 성전, 예루살렘,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령과 진정’(spirit and truth)만이 문제가 된다. 거기에 원리가 있다. 첫 번째 요점은 분명히 내가 죄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그러기에 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 몸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 점을 이렇게 나타낼 수도 있다. 몸의 소욕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 몸의 욕망만을 채우는 순간 그 몸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고, 몸을 가장 앞자리에 놓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 초기의 몇 세기 동안에 위대한 설교자로 불려지는 요한 크리소스톰은 어떻게 몸이 한 제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매우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눈이 악한 것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그 눈이 한 제사가 될 것이다. 혀로 야비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이 한 제물이다. 손으로 죄를 행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그 손은 번제가 되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더하라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것은 하나의 소극적인 국면에 불과하다. 그 외에도 선을 위해서 자신을 능동적으로 몰입시켜야 한다. 손은 구제를 하는 데 쓰고, 입은 우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는 데 쓰고,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데 써야 한다.1) 그것이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이치에 합당한 예배’, ‘정신적 예배’, ‘영적인 예배’, 참으로 영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몸의 모든 지체 전부를 그런 방식으로 드려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신령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찬미를 위해서 쓰도록 하나님께 드리자. 사도는 그 모든 요점을 ‘이치에 합당한’, ‘영적인’이라는 한 단어 속에 표현한다.
* 위의 글은 마틴 로이드 존스의 ‘그리스도인의 행실과 윤리’에서 발췌하였음. 1) 다음은 위의 문장과 관련된, 프란시스 리드리 하버갈의 시다. 제 손을 붙드사 내 목소리 붙드사 당신 사랑의 맥박에 따라 내 왕을 위해, 내 왕만을 위해 움직이게 하소서 항상 노래하게 하소서 제 발을 붙드사 내 입술을 붙드사 당신을 위하여 민첩하고 당신께로서 오는 메시지만을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소서 충만하게 바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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