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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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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제도와 추도예배
작성자 신호균 작성일 2006-01-28 23:23:43
명절에 화목한 가족이 제사문제로 적지 않은 갈등과 마찰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제사는 전통적인 풍습이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마치 불효인양 질책하고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제사의 유래는 12세기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처음으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제사는 유교의 기본 덕목의 하나인 효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예식이 되었다. 중국의 왕들과 제상들로 시작된 제사는 조선 정종 이후에 왕가에서 시작하여 민간으로 퍼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제도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도 아니며 효도의 방법도 아니었지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면서 은혜를 갚거나 복수도 하기 때문에 조상귀신을 잘 모셔야 집안이 잘된다고 하여 죽은 자의 넋을 위로 하는 관습이 되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영혼은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고, 불신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데 그 곳은 서로 왕래할 수 없는 곳이요, 또 세상으로 올 수도 없는 곳(눅 16:19-31)이라 하였다. 죽은 조상은 결코 신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깊은 관념 속에서 만들어낸 미신일 뿐이며,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숭배하는 우상숭배로 십계명의 1-3계명에 어긋난다. 그러기에 이 제도는 결코 아름다운 풍습이 될 수 없다. 성경은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로 정죄하는 대신에 살아계신 부모님들께 힘을 다해 효도(순종, 엡6:1 ;공경, 출20:12 ;경외, 레19:3)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8세기 말에 천주교와 19세기 말에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제사를 우상숭배로 금하는 선교사들과는 달리 평신도를 중심으로 제사를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는 고뇌로 추도예배가 시작하게 되었다. 1897년 [조선그리스도인회보] 9월호 기사에 정동감리교회 이무영성도(당시 궁궐의 정3품 고관)가 어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여 고민하다가 드린 예배가 추도예배의 시작이다. 선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도 스스로가 삶의 실천적인 신앙적 결단이 계기가 된 것이다. 제사문제는 1920년에 [동아일보]에 기사화 되는 등 논쟁거리가 평신도들 사이에서 지속되어 오다가 1934년 감리교 총회에서 추도예배를 정식으로 인정한 이후 1950년대 구세군과 성결교에서, 1970년대 말에 장로교에서 인정하게 되었다.

추도예배는 '죽은 자를 생각하며 슬퍼하며 드리는 예배'란 뜻을 가진다. 결국 하나님보다도 죽은 사람을 향한 예배의 의미가 짙게 깔려 있기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집안에 안 믿는 어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핍박이 심하므로, 추도예배라는 명목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어른들의 눈을 가리던 것이 기독교인의 당연한 예절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추모하거나 추도한 것이 없고, 예를 갖추라고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말라(신26:14)고 하였고, 시편 106:28에는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 있고, 에스겔 24:17에는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도 추도예배를 한 일이 없다. 명분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이지만, 실은 고인을 생각하게 되는 잠재의식이 무의식중이라도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라 할 수 없으나 전도나 교육을 위해 추도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창47:29-31에 야곱의 유언인 "내가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선영에 장사하라"고 맹세까지 시킨 것이 있다고 말하며 추도예배를 옹호한다. 그러나 야곱의 유언은 자기 시신에 대한 애착심으로 선영인 가나안에 묻히기를 소망하였기보다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유언을 생각하며 '가나안에 들어 갈 소망을 갖게 하려고 했던 유언'이라 생각한다. 이 같이 추도예배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사람은 살았을 때에 신앙 여부에 따라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뿐, 죽은 후에는 전혀 아무런 기회도 없기 때문에, 성경은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나 예배 같은 것은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명절날이나 돌아가신 날에 추도예배를 드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도예배를 완전히 무시하기보다는 돌아가신 조상들의 가르침이나 교훈을 기억하면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사랑을 예배를 통하여 경험하는 현재와 미래지향적인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이다. 유학자 주희와 같이 사람을 죽이는 지혜가 아니라 고뇌에 찬 한 평신도의 기독교 토착화를 위한 결단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평신도들의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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